불교와 글쓰기

<불교와 글쓰기>11월 15일 4학기 4주차 후기 & 11월 22일 5주차 공지

작성자
미숙
작성일
2021-11-18 22:04
조회
3107
<불교와 글쓰기>11월 15일 4학기 4주차 후기

우다나, 메기야의 품, <쑨다리의 경>에서 다시 유행녀 쑨다리를 만났습니다. 존경받고 공양받는 부처님과 수행승 무리를 시기한 이교도 유행자들이 유행녀 쑨다리를 이용해 부처님과 수행승 무리를 비난받게 만듭니다. 그 와중에 쑨다리는 죽임을 당하고요. 이교도들의 나쁜 행태 부분을 읽을 때는 “나쁜놈들!”을 외치기도 했었네요..ㅎㅎ 그런데 이 이야기에서 존경받고 공양받는 훌륭한 부처님은 왜 비난을 받게 되었을까요? 주석에 그와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부처님의 과거의 업 때문이라고 합니다. 전생의 보살 때 수행자를 비난한 업으로 인해서 많은 수천년을 지옥에서 보내고 부처님이 되었지만 그 업이 남아 쑨다리의 일로 비방을 받은 것이라고 합니다. 업의 과보라는 것이 참으로 무섭게 느껴집니다.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아라한이 된 제자들도 그 전에 악업이 남아있다면 그에 따른 과보를 다 받는 것을 경에서 읽었던 것이 기억납니다. 수행자들도 그러할진대 수행하지 않는 우리들은 어떠하겠냐며..선생님은 말씀하셨지요..ㅎㅎ 어서 수행을 합시다...ㅎㅎ

누군가에게 비난을 받을 때, 내가 비난 받을 어떤 업이 있구나..라고 생각해보아야 할까요? 그럼 비난 받을 때마다 업을 소멸하게 되는 것이라고 그러니 억울해 할 필요는 없다고 말씀하셨어요. 욕을 달게 받는다!고 생각해보는 거죠... 그런데 욕을 받는 것은 누구일까요? 이번 천개의 고원 시간에 배운 ‘이것임’으로 생각해보자면 욕을 받는 ‘나’는 뭘까요? ‘나는 ~~다’라는 식의 자기에 대한 의식이 없다면 누군가가 내게 욕을 하던 칭찬을 하던 그게 합당하다 안하다 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을 거예요. 나라고 할 만한 것은 없는데 있는 것 같은,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그 메커니즘을 이야기 하는 것이 유식..아비달마..의 아(我)에 대한 탐구인데요. 들뢰즈와 가타리가 말하는 ‘이것임’이 들뢰즈&가타리식의 ‘무아론’이라고 합니다.
‘나는 ~~다’라는 생각을 늘 하고 있지는 않더라도 아(我)에 대한 의식은 나를 떠나지 않아요. 뭔가를 느끼는 이 생생한 감각으로서의 나는 뭘까요. 느껴지지만 이런 나는 허구라는 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그것이 ‘개체화 이론’입니다. 들뢰즈의 중요한 문제의식 중 하나가 ‘개체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라고 하는데, 불교식으로 말하면 “우리는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는데 어떻게 나의 의식과 몸이라는 게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가?”입니다. 무아론에 대한 질문을 개체화의 문제와 함께 생각해보라고 하셨어요.

‘이것임’ (haecceity/thisness)은 13세기 철학자 둔스 스코투스에서 나온 표현인데요, 그도 개체화의 원리에 대해서 사유했기에 들뢰즈는 그를 주목했다고 해요. 물론 스피노자가 가장 중요한데 <어느 스피노자주의자의 회상>에서도 나오듯이 무한한 타자들과의 변용관계로부터 형성되는 것이 개체라고 말합니다. 어떤 개체도 다른 개체의 영향을 받고 무한 연쇄속에 있는 것-그것이 개체화의 원리이고요. 개체를 만들어주는 건 개체와 관계 맺고 있는 무한한 것들입니다.
들뢰즈의 개념으로 ‘이것임’은 ‘사건’입니다. 우리는 나, 내몸은 본질이 있는 뭔가가-다른 사람과는 다른 고유성이- 있다고 생각하죠. 나만의 고유성, 본질, 나를 만들어주는 원리를 찾기 시작하면 초월성을 끌어들이게 될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너의 고유성, 나의 고유성..하는 어떤 절대적인 명령이 있었다는 식으로요. 그것을 들뢰즈는 거부한다고 해요. 나를 만들어주는 원리는 그렇게 초월적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 ‘나를 구성하는 일체의 것은 내가 놓여있는 이 평면위에 다 내재하고 있다’는 것이라고요.

494쪽, “인칭, 주체, 사물 또는 실체의 양태와는 전혀 상이한 개체화의 양태가 있다.”
여기서 개체화의 양태라는 것은 양태 자체를 ‘끊임없는 개체화의 과정’에서 보는 것입니다. ‘내가 있다’가 아니라 내가 지금의 공기나 습도, 음식과 다른 사람들과 느낌을 주고받는 방식 등에 의해서 어떻게 개체로 생산되는 중인가.. 지금 나라는 개체를 이루어주는 이 순간의 모든 것이, 나를 나이게 하는 것.. 이것이 개체화의 양태입니다.
“우리는 그것에 <이것임>이라는 이름을 마련해 놓았다. 어느 계절, 어느 겨울, 어느 여름, 어느 시각, 어는 날짜 등은 사물이나 주체가 갖는 개체성과는 다르지만 나름대로 완전한, 무엇 하나 결핍된 것 없는 개체성을 갖고 있다. 이것들이 <이것임>들이다. 여기에서 모든 것은 분자들이나 입자들 간의 운동과 정지의 관계이며, 모든 것은 변용시키고 변용되는 권력(역량)이라는 의미에서 말이다.”
정지된, 한 순간의 ‘나’는 없네요. 계속 개체화의 과정을 겪고 있습니다. 매번 이순간의 모든 사건과 함께 작동하고 있고 이 모든 사건의 합이 나입니다. 아니 이 모든 사건이 나를 통해 표현되고 있어요. 들뢰즈식의 무아론.. 개체화론은 무아론입니다.

495쪽 “순간의 개체성이 항상성과 지속성을 가진 개체성과 대립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하루살이가 만세력보다 더 적은 시간을 가진 것은 아니다. ... 이와 반대로 몇 년의 세월이 가장 오래 지속할 수 있는 주체나 객체보다 길 수도 있다. <이것임>들 사이에서, 또 주체들이나 사물들 사이에서 균등한 추상적 시간을 착상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루살이의 하루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양적인 시간이 아니겠지요. ‘이것임’의 시간이 그렇듯.. 하루살이는 영원을 살다가 가는 것일 거에요.. 유한한 개체성은 무한함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니까요.
497쪽 “당신들은 어느 날, 어느 계절, 어느 해, 어느 삶 등의 개체화를 가지고 있으며 또한 어느 기후, 어느 바람, 어느 안개, 떼, 무리 등의 개체화를 가지고 있다.”
어느 날 문득 슬픈데, 그건 ‘내가 슬퍼’가 아니라는 거예요. 어느 날, 어느 때 일어난 모든 사건과 더불어서 내가 슬픈 생각이 떠오르기도 하는- 모습으로 형성되고 있는 겁니다. 내가 생각해볼 것은, 그것을 어떻게 관계속에서 긍정적인 힘으로 펼쳐낼 것인가- 하는 것, 이게 역량이겠지요. ‘역량이라는 건 내가 의지를 내어서 뭘 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이 모든 개체화를 나를 통해 표현해 낼 것인가’라는 것이라는 선생님의 말씀이 와 닿았습니다. 그런 것이 역량이네요..! :)

“<이것임>이라는 것은 개체화된 배치물 전체인 것이다.”
‘내가’ 지금 이 순간을 사는 것이 아니라 이 순간에 도래한 모든 사건을 구현하는 자로서 사는 것입니다. 존재는 그렇게 “다른 모든 것들과 더불어서” 실체없이- 사건으로- 발생하는 거였습니다...
499쪽 “<이것임>은 시작도 끝도, 기원도 목적도 없다. 그것은 언제나 중간에 있다.”

‘부정관사와 부정법 동사, 그리고 그 생성 속에 있는 고유명사’ 부분은 각자 복습해보셔요~^^; 저는 이만..후기를 마치고자 합니다. 도반님들~ 남은 한주 잘 보내시고 우리 다음 주에 뵈어요~~~^^ 간만에 보키샘도 불러보고 싶네요.. 보키샘~ 이란에서 몸건강 마음건강하세요오~~~^o^

 

<11월 22일 4학기 5주차 공지>

* 우다나 제5품. 쏘나의 품 (p396~438) 읽어오고 낭송+토론 합니다.

* 한주동안 진행한 글을 가지고 오고, 풀리지 않는 부분을 함께 토론합니다.

* 천개의 고원 강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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