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 글쓰기

10.10 수업 공지

작성자
수경
작성일
2016-09-29 12:38
조회
3315
세존께서 줄줄이 바라문들을 만나고 계시네요.
공부깨나 하고 혈통이며 인물이며 재산이며 뭐 하나 빠지지 않는 바라문들인데 세존 앞에서 자꾸 구멍을 보이지요.
범부들이야 그 이름과 분위기에 압도되어 고개를 숙이겠지만, 세계와 인간에 대해 통찰한 맑은 눈에게는 자신을 방문한 이들이 마음에 어떤 의혹을 품고 있는지, 어떤 계산 위에서 불안과 초조함을 느끼는지가 다 보입니다.
그렇게 다 보이기 때문에, 상대에게 가장 필요한 말을 가장 적절한 태도로 건네고 묻고 또 답을 기다리지요.
하지만 자기 그릇따라 가르침을 받는 수준도 상이하니, 어떤 바라문은 끝까지 사념을 버리지 못해 피곤한 채로 돌아가고, 어떤 바라문은 부처에게 귀의한 뒤 진실의 눈을 얻습니다.
그 모습을 보자니 문수보살을 만난 수많은 대중 중 유일하게 구법의 길을 떠난 선재가 떠오르더군요.

이 같은 바라문들을 보면서, 또 스스로 공부를 하면 할수록 공부만으로 안 되는 어떤 것이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점점 더 많이 하게 된다고 현옥쌤께서 토로하셨지요.
불가에서 수행을 역설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일 것 같다고도 하셨습니다.
네, 암밧타도 그렇고 쏘나단다도 그렇고 공부 많이 하고 연륜도 많이 쌓아 존경받는 바라문들이 붓다의 말을 채 소화하지 못한 것을 보면 확실히 그런 생각이 들지요.
일차적으로는 그들이 한 공부에 문제가 있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왜냐하면 무릇 공부하는 자가 어떤 욕망으로 공부에 임하고 공부를 통해 무엇과 접속하는지가 공부에서는 관건인 것 같으니까요.
공부란 읽은 책/쓰는 글뿐 아니라 누구와 읽고 어떤 방식으로 그것을 말하고  되새기고 내가 그 말을 어떤 순간에 다시 상기하고 사용하는지 등 공부를 둘러싼 제반 과정과 문제를 포괄하는 일 같은데, 그렇다면 여기에는 함께 공부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나 내가 혼자 있을 때 내 마음에 일어나는 일 등이 다 걸리게 되겠죠.
바로 이게 '일상'이라고 생각해요.
공부의 차원과 수행의 차원이라고 개념상 구분할 필요는 있겠으나 이 두 축은 공부하는 자의 '일상'으로 합쳐지는 것 같다는 느낌적 느낌... ㅋ
셈나 때도 함께 이야기했습니다만 현옥쌤께서 고민하시는 그 변환의 지점은, 일상을 얼마나 충실하고 충일하게 보내느냐에 달려 있는 듯합니다.
죽지 않는 한 우리 앞에 언제나 사건사고는 생기기 마련인데, 그걸 해석해내고 그와 더불어 변환될 수 있는 건, 내가 그간 어떻게 일상을 구상하고 구축했느냐에 달린 일(보장 백퍼, 는 물론 아니져;) 같아요.
인간은 사건을 막거나 피할 수도, 또 제 스스로 원하는 사건을 만들 수도(이러면 이미 사건이 아니죠;) 없다는 건 희랍비극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인간에게 남는 문제는 그래서 사건 앞에서 내가 어떻게 하느냐밖에 없는데, 이것도 보장된 것은 하나 없지만, 그래도 단 하나 우리가 시도할 수 있는 건 오직 일상 안에서 매순간 눈을 뜨고 사는 것!
.....가령 잠든 자는 철방이 데워지고 있는지, 사람들이 자고 있는지 깨어 있는지 보지 못한 채, 걍 소멸해버리겠져.
전 노신의 철방 이야기가 그런 측면에서 무섭습니다;; 자다가 소멸된다는 것, 아무 것도 인식하지 못한 채 모든 것을 상실하고 그 자신도 상실하지만 바로 그 사실조차 모르는 곤충처럼 내가 살 수 있다는 것.

언어에 통달해 있고 철학적 지식도 출중한 바라문이 세존의 가르침 앞에서 자기 명성과 재산을 걱정하는 것을 보면서, 공부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그리고 오래/많이 공부한다고 해서 낯선 말에 충격받는, 즉 사건을 제대로 맞이하는 지혜를 얻을 수는 없다는 생각을 새삼 해보게 됩니다.
음, <디가니까야>를 읽으면서 저는 희한할 정도로 공부에 대해 자꾸 생각하게 되네요. 다른 분들도, 한 학기동안 붙들고 갈 화두, 마지막에 쓰고 싶은 글의 테마를 조금씩 조금씩 잡아가심 좋겠습니다.

자, 10월3일은 개천절 연휴로 이번 학기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방학 함 해봅니다 ㅎㅎ 지금까지 진도 나가느라 바빴던 경들을 다시 읽으시며 연휴를 즐기셔요.
10월 10일에는 채운쌤과 함께 전체 합평 및 약간의 개념 정리 있겠습니다. 질문 준비해오심 좋겠지요.
그리고 지난 셈나 공통과제 첨삭본 받으시면 참고해 수정한 뒤 올려주시고요. 한글 파일로, 늦지 않게, 공개글로 ^^;

지난 셈나 후기는 은남쌤... 어여 해주셔요, 기억에서 사라지기 전에 >.< 10일 간식도  은남쌤.
그럼 시월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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