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 글쓰기

<불교와 글쓰기> 9월 13일 3학기 7주차 공지

작성자
미숙
작성일
2021-09-09 21:05
조회
2622
 

다음 4학기 에세이를 구상중입니다. 이번 시간에는 그 생각들을 글로 써와 나누어 보았는데요. 희미한 생각들은 드러나자마자 도반들에게 가지치기를 받으며 정리되는 기분이었습니다. ㅎㅎ 구상의 방향이 그날 이후 바로 바뀐 분들도 있으실 테고 아직 주제를 찾지 못한 분들도 있으시겠지만 분명히 가슴에는 하고자하는 이야기가 있을 거예요. 잘 찾아보아요.^^

천개의 고원 토론 시간에는 10고원 중 <어느 스피노자주의자의 회상1,2> 부분을 토론 하였습니다. 아는 이름이 나왔다고 좋아했지만...(..) 아무튼 저는 ‘무슨 소리를 하는지 전혀 모르겠는건 아니다’의 상태를 희망적이라 생각하려고 했답니다.;; 물론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말로 해보라면 못하겠어요. 그래서 말을 만들고 말을 하시는 도반님들의 이야기를 겸손하게 들었답니다... 토론 시간에 샘들이 하신 말씀을 떠올리고 메모를 보며 다시 책을 읽으니 조금은 더 이해가 가요. 감사합니다.^^

우선 ‘되기’는 무엇인가? ‘생성’이라고 합니다. 생성이라고 하지만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운동이자 과정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사실 생명의 모습은 되기가 아닌 과정이 없다고 봐야겠지요. 에티카를 공부할 때도 많이 들었던 ‘운동과 정지, 느림과 빠름’ 그리고 그것들의 ‘관계’. 그 운동의 관계에서 생성되는 것이 개체이고 ‘자아’인 것이죠? 개체나 자아를 규정되고 주어진 것에서 생각하는 오래된 사유 습관을 벗어나 사유해봅니다. 왜냐하면 그런 사유방식이 수동적이거나 본질주의에서 오는 허무주의적인 삶의 태도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에요.
관계 속에서 개체가 결정이 된다는 말, 개체는 관계 속에서 다른 개체의 부분이 될 수 있고 그러한 과정이 무한대로 계속된다는 말, 그래서 각 개체는 하나의 무한한 다양체라는 말들은 불교의 무아, 연기, 일미진중 함시방을 떠올리게 한다고 하셨어요. 들뢰즈 가타리도 부처님도 이 복잡한 세계의 관계성을 말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변용태는 생성이다.”(p486) 이 말은 변용태는 ‘되기’becoming라는 뜻이겠지요? 그러나 우리는 몸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몸체에 관해 전혀 모른다고 하죠. 몸체의 변용태들이 어떤 건지, 다른 변용태들과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전혀 모른다고 해요.(p488) 여러 번 나오는 능동·수동이라는 말이 눈에 띕니다. 몸체에서 “능동적 변용태들과 수동적 변용태들을 찾아내”야 하는 거겠지요? 그 방법은 어떤 관계 속에서 어떤 변화들을 계속 시도하느냐에 달려있는 것이겠고요.

이번 주 후기는 왕언니 현숙샘께서 써주실 거에요.^^ 샘! 이번 주에는 글 쓸것이 많으니 우리 간단히 글 올리고! 과제하여요~~^^ 샘께서 토론 시간에 말씀해주신 것만 해도 얼마나 감사한데요! 모니터 너무 보시면 건강에 해로와요..>_<ㅎㅎ 도반님들 남은 한주 잘 보내시고 다음 주에 뵈어요~~!

 
<9월 13일 3학기 7주차 공지>

* 이띠붓따까-여시어경 <제3장. 제삼품과 제사품> (p358~411) 읽고 공통과제 해옵니다.

* 천개의 고원 강의가 있습니다.

* 수정한 2학기 에세이를 일요일(12일)까지 채운샘 메일로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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