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 글쓰기

<불교와 글쓰기> 10월 18일 3학기 10주차 후기 & 10월 25일 4학기 1주차 공지

작성자
미숙
작성일
2021-10-22 13:15
조회
2861
<10월 18일 3학기 10주차 후기 >

4학기 에세이 개요와 목차잡기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말씀을 들어보면 가장 생각해보아야 할 것은 “이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 생각하기”, 고민하는 그것 안에 들어있는 탐진치를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행복’을 두고 말해보자면, 행복이라는 게 뭔가? 행복을 원하고 꿈꾸고 애쓰는데 왜 행복하지 못할까? 불교에서 말하는 행복은 뭘까,. 불교를 결론으로 가져오지 말고 불교의 담론을 가지고 문제를 분석해야 한다고 하셨어요. 계속 질문하고 문제의 본질로 들어가 봐야 하네요. 그리고 문제를 가져올 때 맥락을 살펴야 하고요. ‘이 문제를 생각하는 순간 어떤 전제들을 의문시 하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전제들에 빨려들어 간다’는 말씀도 기억에 남아요. 빨려 들어가지 않게 조심^^ ‘어떤 현상이 내포하고 있는 기묘한 역설’도 있으니 잘 보라던 말씀도요. 개인적인 코멘트 잘 메모해두셨지요? 자신의 문제를 가지고 혹은 문제를 찾으면서 앞으로 2주 동안은 공부해 온 경전들 속에서 어떤 구절을 가지고 문제를 풀어보고 글을 쓸 것인지 글감을 찾는 시간을 가집니다.^^

*
천개의 고원  10고원, -되기 고원 강의에서는 이해해 두어야 할 용법 정리를 해주셨어요. 간단히 적어볼게요.
<어느 마법사의 회상 1> p454
다양체 개념
이제 여러 번 들었지요. “‘-되기’는 소수적인 것 되기만을 포함한다.” ‘다수’하면 수의 문제 같은데 ‘척도’의 문제라고 합니다. 그러니 소수적인 것은 척도를 흐리는 것, 척도로부터 벗어나는 힘들을 구성하는 것-이 소수적인 것의 문제라고 해요. 그래서 ‘되기’란 소수적인 것의 문제입니다. ‘무엇’이 되는 것이 아니에요. 말로는 ‘여성되기’ 라고 하지만 여성이라는 게 있고 거기에 도달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성되기는 “남성적인 것으로부터 빠져나가는 운동”이라고 하셨는데 여성도 여성되기를 해야한다..는 부분부터 좀 어려워졌어요..;; 암튼..왜 그래야 하냐면, 어떤 척도가 있는데 그 척도에 사로잡힌 게 꼭 지배자만이 아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모든 되기는 상호적인 것이 됩니다. 그런데 또 그런 상호적인 과정에서 ‘여성’의 개념 또한 변형됩니다. 상호변환이 되는 거죠. 이러한 규정성을 벗어나는 일련의 운동이 ‘되기’입니다. 부처님의 사고방식이나 존재방식이 되기 자체라고 하시네요.

동물-되기에는 언제나 무리가, 패거리가, 개체군이, 서식이, 한마디로 말해 다양체가 관련된다. p454
부분간의 관계가 바뀌면 전체가 바뀌는 겁니다. 부분과 전체의 관계를 다양체로 사유한다면 우리가 공부하는 불교와 불교의 마음수행은 혼자만 달라지고 마음 편해지는 일은 아니겠지요.^^ 그리고 되기라는 건 상호 변환되는 일이니 나 혼자의 의지로 무언가를 한다기보다는 무리들과 더불어서 무언가가 주고받아져야 하는 것이라는 점이 참 중요하지요.

팽창, 전파, 점유, 전염, 서식의 양태 p455 이런 것들은 들뢰즈가 생각하는 ‘힘의 전달 모델’이라고 해요. 코로나 시대에 천개의 고원을 공부하며 전염, 감염이라는 말을 들으니..뭔가 익숙하긴 합니다.^^; 우리는 타인과 뭘 주고받는 걸까요?..실체적으로 주고받는 건 없다..감염되는 것이고 ‘변이’가 일어나는 것, 나도 모르게 감염되어 변이시켜 놓습니다. ‘되기는 어떤 모델을 향해가는 지향적 운동이 아니라 자기도 모르는 변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무리 속에 있으면 생각도 감염된다고 해요...들뢰즈가 되기라는 용법의 가장 잘못된 예가 ‘너 커서 뭐가 될래’ 의 용법이라고 했다는 얘기는 재미있었지요.^^; 그것은 되기가 아니고 아이에게 어떤 모델을 강요하는 거라고 하죠.

<반자연적 관여> p456
무슨 말일까요..;; 자연에 반한다 라는 의미라기 보다 들뢰즈와가타리는 자연을 두 가지 용법으로 쓴다고 합니다.
1. 스피노자적 자연 : 남자, 여자, 남자도 여자도 아닌 것 또한 허용, 어떤 것도 가능.
2. 인간의 표상 속에 있는 자연 : 여자, 남자는 자연의 법칙에 어긋나지 않지만 동성애자는 어긋난다...와 같은.
‘자연’은 우리가 자연적이지 않다고 내치는 것 까지도 포함하고 있는 것이 바로 자연이다.

<변용태> -무리 역량의 실행 p457
“죽어가는 송아지들에 대해서가 아니라 죽어가는 송아지들 앞에서” 우리말로 말해보자면 좀 어색하긴 하지만 ‘대해서’와 ‘앞에서’ 이야기는 참 좋았습니다. '대해서'는 ‘대상화’하고 느끼는 거라고 하죠. ‘연민’입니다. 상대를 거리를 두고 보는 거에요. 반면에 ‘앞에서’는 대상화되지 않은, 거리를 두지 않고 보는 관계성을 말합니다.
선생님께서 해주신 후쿠시마의 소들과 농부 이야기를 듣고 저도 동영상을 찾아보았는데 참 기분이 이상했어요. 그런 것이 대해서가 아닌 ‘앞에서’죠. 소를 대상화하지 않았다.. 그것이 변용이라고도 하셨어요. 스피노자가 말하는 변용이 들뢰즈의 되기입니다.

자신에게 미지의 <자연>에 대한 믿을 수 없는 느낌-즉 변용태-을 주는 송아지들 앞에서 책임감을 느낀다. 왜냐하면 변용태란 개인적인 느낌(=감정)도 아니고 어떤 특성도 아니며, 오히려 자아를 고무하고 동요시키는 무리의 역량의 실행이기 때문이다.
감정과 달리 변용태는 내가 나에 갇히지 않을 때만 가능한 행동입니다. 내가 나에 갇히지 않는 마음, 종에도 개체에도 묶이지 않는 차원은 불교에서 말하는 마음으로도 생각해볼 수 있겠지요.

<어느 마법사의 회상2> p462
“다양체가 있는 곳에는 반드시 예외적인 개체가 있기 마련이며, 동물-되기를 위해서는 반드시 그와 결연을 맺어야만 한다.”
이건 또 무슨 이야기일까요.. ‘예외적인 개체’는 무리의 우두머리입니다.
늑대무리나 철새무리에는 모두 우두머리, 전사같은, 예외적, 가장 전위에 속하는 존재, 가장 혁명적이고 위험을 무릎 쓰는 존재입니다. 예외적 개체라고 말하는 것은 가장자리 of 가장자리, 가장 탈영토화의 멀리까지 간 존재를 말합니다. 생각해보면 이런 존재가 없는 무리는 본 적이 없네요. 되기를 실현하려면 그런 존재와 결연을 해야한다고 합니다. 되기에 대한 최고 걸작의 하나라는 모비딕은 아직 못 읽어봤는데..어서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모비딕』 전체는 되기에 대한 최고 걸작의 하나이다. 에이허브 선장은 저항하기 어려운 고래-되기를 갖고 있지만 이 고래-되기는 무리나 떼를 피해 <유일자>, <리바이어던>인 모비 딕과의 괴물 같은 결연으로 직접 나아간다.” p463

수업시간에 머릿속에서 정리가 되지 않았던 anomal(특이한), anormal(비정상적인)을 구분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모든 <동물>은 자신의 <특이자Anomal>를 갖고 있다.”p463

anomal(특이한) anormal(비정상적인) 구분 :
1. anomal(특이한) : 척도가 작동하지 않는다. a는 부정접사. 노말한 것을 벗어난다는 것. 척도가 기준이 아sl다. 평범한 정도를 의미한다. 평범한 것으로부터 벗어난 것, 이질적이고 예기치못한 변이로 의해서 돌출하는 것. / (비정상적인 것이 아니라) 특이자, 평범한 것들 중에서도 뛰어난 것들을 말하는 거다. 가장 용감한 것들. 뭔가를 무릎쓰는 것들. 이런 존재들./ 나우시카는 anomal한 존재다. 용감한 존재. 다른 사람과 좀 다른 사고를 가지고 있다.

2. anormal(비정상적인) : 척도에 의해 배제된 것. 척도화되지 않을 것들, 이런 것을 수동적으로 의미하는 단어.

“a-normal(비-정상적인)은 규칙을 갖지 않는 것 또는 규칙에 반하는 것” ‘오른쪽으로 가라고 했으니까 왼쪽으로 가야지’ 이건 규칙에 반하는 게 아닙니다. 아노말이 아니라 청개구리..^^ 이렇게 하라고 했으니까 나는 반대로 해야지-하는 것은 여전히 규칙에 종속되어 있는 겁니다. 반감을 가지고 청개구리 방식으로 ‘명령을 따르는’ 것이 됩니다. 무서운 이야기지요...;;;
“an-omalie(특이함)은 형용사형을 잃어버린 그리스어 실사로서, 불균등한 것, 꺼칠꺼칠한 것, 우툴두툴함, 탈영토화의 첨점을 가리킨다.”p463

“특이함은 하나의 다양체와 관련해서 하나의 위치 또는 위치들의 집합이다....동물-되기를 위해서는 언제나 모비 딕이나 요제피네와 같은 <특이자>와 결연해야 하는 것이다.” p464
‘결연’ 아닌 다른 것은 ‘혈연’이죠. 위에서 아래로, 계보적이고 중심을 재생산합니다. 거기서 삐져나와 중심에서 벗어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중심에서 벗어나서 탈영토화의 첨점에 있는 특이자와 결연하라..

<가장자리> p465
“개체도 종도 아니라면 이 특이자란 무엇일까? 그것은 하나의 현상이지만, 가장자리 현상이다.”
가장자리는 경계이고,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추상의 차원, 문턱, 경계선, 변곡점...그런 자리이죠. 거기에 특이자는 존재합니다. 들뢰즈가 항상 노심초사 무엇과 접속하면서 도주할 것인가가 중요하다고 당부하잖아요? 탈영토화 했다가 바로 재영토화 될까봐.. 부처님과 같은 특이자와 접속해야 합니다. 부처님과의 접속은 재영토화가 안 되는 결연이에요. 좀 가르쳐주시고는 다 떠나라고 하십니다..

“..동물-되기의 정치도 존재한다. 이 정치는 가족, 종교, 국가의 배치물들과는 전혀 다른 배치물들 안에서 정교해진다. 이 배치물들은 소수자 집단들을, 즉 억압되었거나 금지되었거나 반항적이거나 공인된 제도의 가장자리에 있는 집단들, 외부적인 만큼 더 비밀스러운 집단들을, 요컨대 특이자 집단들을 표현한다. ” p469
중심에서 배제되었는데 계속 중심을 지향하며 들어가고자 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반면에 배제되었을 때, 나 중심 필요없는데? 하는 이들이 있죠.. 탈영토화의 첨점에 있는 자들입니다.

-되기 고원 강의는 다음 주에 계속됩니다~~~^^

 

*
학술제 관련하여 코로나를 주제로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우리 이야기는 코로나라는 전염성 높은 질병, 그리고 그것에 대응하는 우리의 모습에 대해서 이야기하다가 불교의 연기緣起로 이어졌습니다. 연기 이야기가 안 나올 수가 없죠. 우리가 이렇게 연기적으로 연결되어있다는 것을 여실하게 보여주고 직접 느꼈던 적은 없었으니까요. 그리고 ‘관계’에 대해 한참 이야기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내가 지금까지 어떤 방식으로 살아왔고 어떻게 관계를 맺어왔는지 알게 되었는데도 그런 것에 대해 질문하지 않는다는 것, 그러면서 욕망은 크게 변하지 않은 채 비슷한 방식으로 대응하거나 예전으로 돌아가고만 싶어 한다는 이야기가 인상 깊었어요. 그러면서 우리의 관계맺기는 어떤 것인가, 어떤 것일 수 있을까..물었습니다. 그동안 습관적으로 만나던 관계가 차단되어 자연스럽게 정리되는 것이 좋기도 하다는.. 코로나의 다른 얼굴도 있었는데 무척 공감이 가죠..^^; 그동안 즐겁다고 생각했었던 것을 다른 관점에서 볼 수 있게 된 것은 불교에서 배운 가르침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문화면에서는 핵심적인 것은 못 바꾸었지만 어떤 시도를 해볼 수 있었고 변화될 수 있는 계기를 맞은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누었고요. 이번에 나눈 이야기는 메모를 잘 해놓고 다음에 다시 또 토론하는 것으로 해요.^^

끝으로 글 주제 찾기에서 길을 잃은 도반들을 위해.. 말씀해주시고 도와주신 우리 도반님들~~사랑해요..ㅎㅎㅎㅎ 감사합니다.^^ 애써보도록 해요. 아자자!! 이제 4학기 시작이네요. 아침저녁으로 날씨가 차니 모세혈관 조심하시고..남은 한주 잘 보내시고 월요일에 뵈어요~~^^

 

<10월 25일 4학기 1주차 공지>

* 천개의 고원 강의가 있습니다.

* 우다나 제1품. 깨달음의 품 (p241~275) 읽어오고 낭송+토론 합니다.

* 지금까지 읽었던 경전들을 다시 보고 자신의 주제와 연관해서 글감을 모읍니다. 어떤 구절을 가지고 분석하고 해석할 것인지.. 밑천이 되는 글을 정리하고 뽑아 와 토론합니다.

* 에세이 개요와 목차 잡아오기 (자신의 진도에 맞게^^)
전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