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 글쓰기

<불교와 글쓰기> 3학기 9주차 수업 후기

작성자
지영
작성일
2021-10-15 08:26
조회
2972
 

이번 주는 강의가 없어 명상 후, <이띠붓따까> 공통과제 토론과 주제 에세이 토론을 좀 길~고 깊~게 했습니다.

 

<명상>

 

이번 주는 오랜만에 뵙는 윤지샘께서 테라바다 전통의 위빠사나 명상의 첫 단계 수행법을 나누어 주셔서 연습해 보았습니다. 대부분의 명상이 궁극적으로 통찰력을 기른다는 점에서 모두 같지만 전통과 지역에 따라 수행법은 조금씩 차이가 있다고 하는데요, 저희가 배웠던 JOL에서는 호흡 명상을 할 때, 숫자를 세기도 하고 눈을 뜨기도 하고 혹은 다른 명상을 번갈아 하는 등에 비해, 이 첫 단계 호흡 명상은 오직 촉각에 집중함으로써 단기간에 고요한 마음의 상태인 사마타를 수행하는 데 초점을 둔 수행이라고 합니다. 이를 통해 빠르게 위빠사나를 경험하기(?) 위한 전략적인 수행법이지요.

그러고 보니 이 명상은 현대인이 접근하기 쉽게 고엔카 법사님이 고안한 프로그램이라고 했던 말이 떠오릅니다. 몇 년 전, 명상을 전혀 몰라도 할 수 있다는 말에 저도 별 생각 없이 갔다 오긴 했는데요, 대부분 혼침 아니면 소설을 쓰며 보냈습니다. 이런 생 닐리리야를 먹여주고 재워준 것이 너무 죄송하고 감사해 봉사로 때우려 했던 기억만 남아있네요. 다행히 지금은 예전엔 외계어 같던 말들이 조금이나마 귀에 들어와서 즐거웠고, 어설프지만 그동안 배운 경험을 바탕으로 긴장을 풀고 다시 배울 수 있어서 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

 

<공통과제 토론>

 

먼저 [하느님의 경]으로 글을 써 오신 호정샘이 ‘부모는 세상을 보여주는 자'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를 질문해주셨습니다. 이에 대해 자식은 부모에게 육신을 받아 부모의 그늘 아래서 세상으로 본다는 이야기를 하다 그 은혜를 갚는 방법은 무엇인가란 질문으로 이어졌습니다. 진리와 연결시켜드리는 것이라는 답은 바로 나왔지만, 어떻게 해야하는 가에서는 모두들 어려움을 토로하셨죠. 현숙샘께서 성당에 다니시는 어머니와 불교 공부를 하는 아들의 이야기를 예로 들어 주셨는데요, 어머님이 이해할 수 있는 성경을 예로 들어 법을 전달하시는 아들의 행이 분별없는 보살행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주는 ‘의식주’와 관련된 키워드로 글을 쓴 분들이 많았는데요, 그중에서 집값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해 집단들 간의 갈등과 싫든 좋든 그들과 함께 사는 입장에서 나의 선을 지키기 어렵다는 미영샘의 글에 대해 오래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사시는 아파트 근처에 과거 교도소였던 시설을 어떻게 할지를 놓고 오가는 각 집단 간의 공방을 비판적으로 보는 한편, 그들에 찬성하진 않지만 공동체 일원으로서 동의서에 도장을 찍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이에 대해 대부분 자신의 이익에 따르는 경우 이를 탐욕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단순히 탐욕이다라고 말하는 것이 우리에게 무슨 도움이 되는가라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표피적 현상이나 일반론에 머물지 않고, 정말 우리가 살펴야 하는 것은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나는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고 어떤 감정의 파도를 경험했는지 조목조목 따지고 들여다보는 것이라고요. 이는 언제나 모두에게 어려운 문제지만, 특히나 올해 부쩍 힘들어하셨던 미영샘을 애정을 가지고 지켜보던 여러 샘들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좀 더 후벼 파는 질문들을 이어가셨는데요, 미영샘도 도반들의 마음을 이해하시고 당시 행동이나 선택에서 스스로 어떤 마음의 갈등이 있었는가에 관해 좀 더 드러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미영샘과 도반님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마음을 들여다보라는 말이 사건에 대한 기억이나 나열이 결코 아님을 다시금 확인했습니다. 적어도 스스로 당연하다 여겼던 자신의 행동에 대해 왜 그랬는지에 대한 고민을 해야한다는 말도요.

 

이어서 저와 미숙샘도 의식주와 관련해 글을 써왔는데요, 둘 다 마음의 갈등을 파고들기보다 공이나 갈애라는 개념어로 두루뭉실 뭉개고, 결론은 '~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것이다'라는 식으로 끝내 버렸습니다. 서로 불편함을 느끼는 부분은 달랐지만, 전개 방식이나 결론이 똑같은 글이었지요. 좋은 말을 아무리 많이 듣고 좋은 스승님과 도반들과 함께 배워도, 스스로 질문하지 않으면 어떤 문제를 겪든 그 길은 차이 없는 반복이구나 싶었습니다. 수업이 모두 끝나고 닮은 사람끼리 티타임을 가지며 머리를 맞대고 다른 샘들의 글과 서로의 글을 나름대로 분석해보았습니다. (다음에는 차이를 만들어 보십시다요!)

 

다음으로는‘다시 태어나길 바라는 보살’과 ‘번뇌가 있기에 해탈이 있다’는 출발은 각각 다르지만, 재가자로서 개똥밭을 구르며 수행하는 삶의 고귀함과 고苦에 대한 이해의 깊이와 관련해 경아샘과 배샘의 고민 지점이 통하셨는데요. 서로의 글을 통해 알고 있다고 여긴 부분을 좀 더 분명하게 보게 되셨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배샘의 파도타기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저는 좀이라도 깊은 물에 들어간다는 상상만으로도 불안하고 긴장되는데, 정작 바다에서는 몸의 힘을 빼야 한다니요. 파도를 한 번 타보면 그 느낌을 알까요?

암튼, 단지 파도 탈 때뿐 아니라 평소의 가까운 사람들에게 말하는 방식에서도 긴장 풀고 나니, 내가 당연하다 여긴 것들에 질문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일상의 사마타와 위빠사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배샘이 파도타기와 불편했던 대화를 통해 마음을 살피면서, 고를 배움의 기회로 전환하는 연습을 하셨구나 하고요. 또 지금은 더 깊은 심연을 들여다보시느라 매주 기진맥진이셨구나 싶구요. 부디 건강 해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불교팀 ‘모두의’ 민호에게 샘들의 조심스러운 걱정과 응원과 격려가 이어졌습니다. 한 마디로 민호는 규정이나 표상을 자신에게 들이밀며 스스로를 갈구는 것이 장애라고요. 다만 개념에 묶여있으면서도, 개념만 던져놓고 그 말에만 갇히는 식이 아니라, 배운 모든 것을 동원해 그것을 풀어내려 하기에 글을 촘촘하게 쓰는 민호의 성실성은 모두 인정했습니다. 생각해볼 거리는, 다람쥐도 도토리를 쟁여놓고 살지만 문제가 안 되는데, 재물에 대한 탐심이 일어나는 것 자체를 문제라고 규정하는 마음을 좀 더 보라는 이야기와 하나에 꽂혀 이것이 맞다고 글을 시작해서 증명하겠다는 의욕을 앞세우려 하지 말고 비틀기를 해보라는 조언이 있었습니다. 맞다고 여긴 그 말에 대해, 이렇게 살면 저렇게 될 수 있는 거야? 라는 질문을 가지고, 개념을 증명하지 말고 깨보라구요. 훌륭한 말을 기정사실로 하고 증명하려다 보면 찌질한 내 이야기가 그저 자책으로 끝나고 무엇보다 그 기저의 마음이 안 나온다구요. 이는 분명 시간이 걸리는 일이니 서두르지 말라는 당부도 있었지요. 저는 성실하게 과정을 밟고 있는 민호를 보는 것만으로 되려 힘을 얻고 있다는 말을 덧붙이고 싶네요.

 

오히려 훈샘의 글이 개념에 갇혀있다는 매운맛 코멘트를 받았습니다. 사실 틀린 말도 없기에 반문할 것도 이야기할 것도 없는 글이라는 말은 저도 똑같이 계속해서 듣고 있는 말이라 남 이야기로 들리지 않았습니다. 특히 ‘현재에 집중하지 못한다는 것이 어떤 욕망에서 나오는가를 보지 않고, 남의 이야기로 훅 띄어버린’ 부분이 개념에 갇힌 제 글과 같고, 또 그에 대한 질문 마저 추상적으로 대답하는 것도 같았습니다. 샘들이 이를 하나하나 질문으로 쳐내어 주셨는데요, 훈샘은 글을 잘 쓰고 싶다는 마음에서 당장 읽을 책이 있는데도 새로 읽고 싶은 책을 읽게 되고, 그것을 정독하지 못하는 것에 계속 불만족을 느끼고 있다고 조곤조곤 말씀하셨습니다, 이를 탐심이라고도 짚으셨는데요, 샘들은 이를 단순히 탐심이라고만 하지 말고 그 탐심이 어떻게 생겨나는가를 보라는 멘트를 덧붙여주셨습니다. 사실 호정샘을 시작으로 샘들이 답을 다 알려주셨는데, 좀 더 생각을 해보는 게 훈샘에게도 저에게도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10일 명상 코스를 다녀오신 윤지샘의 명상 기행문(?)을 읽었습니다. A4 두 장을 빼곡히 채워오셨는데요, 읽는 내내 지루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읽고 나서 바로 든 생각은 이 글을 명상하러 가는 사람이나 관심 있는 사람에게 권해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다른 샘들도 다들 알차고 설득력 있는 글이라며 명상 홍보 책자로 손색이 없다는 칭찬과 관련된 곳에 글을 올리자는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조만간 규문 톡톡에서 볼 수 있을 것 같아 자세한 내용은 생략합니다.

다만 개인적으로 저는 윤지샘 글을 읽고 몇 년 전 저의 명상 기행문이 어디서 막혔는지 알았습니다. 당시 저는 명상이야기는 하나도 없고 도착 전의 풍경이나 룸메이트와 옆방 분에 대한 마음의 변화를 주로 썼었는데요, 지금 생각해보니 굳이 명상 관련 이야기를 써야 하는 것이 아니라 ‘여행과 글쓰기’였는데, 명상을 하면서 남을 비난하면 안된다(!)는 이상에 사소한 에피소드마저 틀에 우겨넣느라 정작 당시 제 마음과 상태를 살피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결과 어떻게든 이해하려고 애를 쓰는 저에게 만족하며 그럴수록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고, 10일 동안 부끄러운 소설만 수도 없이 썼던 거지요. 하지만 엉망으로라도 글을 쓰면서 답답함이 남아 있었는데요, 그래서 이번에 풀릴 것도 있었던 거 같습니다. 윤지샘, 회향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장장 3시간도 넘게 걸린 공통과제 토론이 마무리되었습니다.

 

<주제 에세이 토론>

 

호정샘은 안정적 삶의 허상에 대해 반대로 삶이 불확실하다고 느끼기에 안정을 원하는 마음을 살펴보라는 코멘트가 있었습니다. 안정된 삶이란 것이 호정샘에게는 어떤 형태로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으로 나타나는가를 구질구질하다 싶을 정도로 들어보고 싶네요.

 

윤지샘은 비교와 경쟁에 대해 풀어보고자 하셨는데요, SNS 를 통해 자신이 누리는 풍요를 자랑하는 현상이나 이를 스펙처럼 관리하고 실제 면접에도 사용되는 사례 등을 통해 조건적으로 자신의 가치를 평가하는 것이 내면화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미지를 관리하는 한편 그 속에서 우울과 좌절을 양산하고 있다는데서 이야기를 시작해 보기로 하셨습니다.

 

분노를 주제로 잡으신 미영샘에게는 ‘무엇에 대한 누구의 분노인가’에 좀 더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코멘트와 함께, 다양한 예시의 향연이 이어졌습니다. 묻지마 살인부터 부모의 욕망에 편승해 자기 혐오의 극단에서 자살하는 학생들의 경우까지. 무엇보다 사회적 분노가 드러나는 사례를 보되, 어떤 양상으로 드러나는가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하셨는데요, 가령 시대에 따른 분노의 메커니즘을 살펴 우리 사회에서 독특하게 드러나는 분노의 양상을 분석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가부장적 사회에서 원한과 자책으로 드러났다면 지금은 자신으로 향하는 자살의 형태로 드러나는 것으로 비교해 볼 수 있다고요. 분노와 관려한 방대한 사례를 듣다보니 어지러웠지만, 평소 미영샘이 재미있게 풀어주신 공통과제처럼 특유의 재치로 재미나게 풀어 주실거라는 기대를 슬쩍 해봅니다.

 

현숙샘과 경아샘과 민호는 지금 써오신 방향대로 좀 더 고민해서 확장해 나가는 거스로~(감사합니다~)

 

미숙샘은 먹는다는 것이 지금 우리 시대에 어떻게 문제화되는가, 어떤 괴로움이 있고, 어떻게 불교적으로 볼 수 있나, 다른 말로 어떤 공업으로 드러나는가를 좀 더 살펴보라는 코멘트를 받았습니다. 먹는다는 것이 단지 탐욕의 문제다 라는데서 멈추지 말고, 먹방을 추동하는 힘이 무엇인가 좀 더 질문해 보라는 것도요. 근원을 찾는다는 것이 공허한 개념어에 갇히지 않게 우리 정신줄 붙잡아 보십시다! ‘적당히’보다 ‘먹으면 어때’하고 넘어가곤 한다는 샘의 경험을 현상들에 확장해 갈애를 좀 더 구체적으로 이해해 볼 수 있을까요? 

 

훈샘은 독신이라는 주제가 불교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안 보인다는 코멘트를 받고 이를 염두하며 다른 주제를 더 고민해보시기로 했구요,

 

저도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야 하는데요, 독립을 키워드로 우리가 정신적 독립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해보려고 합니다. 물어보니 여기엔 주로 자신감, 독립심, 자립심 등의 의미가 함축되어 있는데, 그 독립적 주체와 관련해 구체적인 사례를 살펴보면서 좀 더 풀어보겠습니다. 불교와의 연관성은 무아와 대비해 '내가 있다'는 개념이 지금 드러나는 방식이지 않을까 합니다.

 

제 이야기도 아니면서 너무 시시콜콜 쓰게 되어 줄여보려고도 했지만, ‘외부에서 찾지 말고 마음을 들여다보라’거나 ‘근원을 살피라’는 식의 말이 되는 것 같아, 정리를 하다보니 각자 구체적이 지점들이 있었고 생각할 지점들이라,,,이를 압축해 보자니 뭔가 듬성하고 왜곡되는 것 같아 이리되었습니다. 다 쓰고 나니 다들 숙지하셨을 텐데 제가 뒷북이구나 싶습니다. 미숙샘의 말처럼 제게 있는 것인데 스스로는 못보던 것이라, 마치 금은보화를 발견하고 횡재한 것 같은 마음에 꾹꾹 눌러담았습니다.

널리 양해해 주시기를 바라며 이상 후기를 마칩니다.

 

 
전체 4

  • 2021-10-15 11:20
    잘 읽었습니다. 지영샘이 경청했다는 것이 느껴지네요. 잘 듣고 다시 잘 이야기해주니 다음 에세이 쓰는 것과 관련해서도 갈피가 잡히네요. 저도 구질구질하게 한 번 풀어보겠습니다. 후기 고맙습니다.

  • 2021-10-15 21:09
    이리도 꾹꾹 눌러 담아주시고...감사해용.... 열심히 해보겠습니당. ^^

  • 2021-10-17 21:48
    차분하고 자세한 후기 잘읽었습니다~

  • 2021-10-17 22:56
    지영샘의 노력과 경청이 함께 읽히는 후기네요. 저도 잘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