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 글쓰기

<불교와 글쓰기> 7주차 후기

작성자
지영
작성일
2021-06-26 12:21
조회
2657
불교와 글쓰기 7주차 후기입니다.

오전에는 명상 후 에세이 중간점검 보충 코멘트를 했습니다. 점심은 보키샘이 처음 도전하셨다는 갈치 무침과 윤지샘이 캡슐 조미료(?)로 시원한 맛을 낸 콩나물국을 맛나게 먹은 후 슬렁슬렁 산책을 했구요. 오후에는 들뢰즈의 여섯 번째 고원 ‘기관없는 신체’ 토론 후 오래간만에 <담마파다> 낭송으로 마무리했습니다.

 

먼저 보충 코멘트를 받은 사람은 저 포함 두 명입니다. 이야기해주신 내용은 촘촘 미영샘을 흉내내 정리했습니다. (해보니 생각보다 더 어렵네요˚◇˚)

-내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처했을 때 상대에게 화를 내는 그 마음을 잘 살펴봐야 합니다. 분노는 수동적인 반응일 뿐 자기 힘으로 문제를 풀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반응적이라는 건 외부 조건에 일희일비한다는 것이고 이는 자기기만과 자기 부정과 함께 작동합니다. 현재의 자신을 인정하지 않고 이상적인 나를 외부에서 인정받으려는 것입니다. 이는 존재와 분리된 역량을 갖춘 나라거나, 허영과 허세 등과 함께 작동합니다. 또 결과나 반응이 내 생각과 다르고 기대보다 낮을 때, 타인에게도 폭력적으로 행동하는 것도 살펴보기를 바랍니다. 이를 구체적인 상황을 통해 보면서 내가 어떤 방식으로 힘을 썼는지, 그때 내가 느꼈던 쾌에 대해 써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내가 내 힘을 만들어낸다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도 생각해 보십시오.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말과 ‘별 볼 일 없는 인간’이라는 자의식에서 벗어나고 싶었고 그래서 다양한 활동을 했지만 그것이 도피처였다고 써오셨습니다. 여기 더해 자신이 원하는 모습이나 바램이 무엇인지 또 그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진정한 행복인지 더 세심하게 질문해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가령 내가 생각하는 별 볼 일 없는 인간과 별 볼 일 이는 인간이란 무엇인지, 그것을 가르는 기준은 무엇인지. 또 지금 공부를 별 볼 일 있는 인간이 되기 위해 하는 것은 아닌지, 타자를 이해한다는 것과 관련하여 예상과 달리 어떤 문제가 있었고 그 사태를 통해 무슨 일이 있었고 그것을 어떻게 이해했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시기를 바랍니다.

 

 

점심 산책 중~

60d699c3c69627161092.jpg60d699c3d12aa4166327.jpg60d699c46cff86967719.jpg

 

 

 

 

 

60d699c42e17e8542195.jpg60d699c3b72913728876.jpg

 

 

 

 

 

 

 

 

 

 

 

이번 주 들뢰즈/가타리의 여섯 번째 고원인 ‘기관 없는 신체’에 대해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토론을 듣고 강렬함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그 개념이 왜 필요한가, 강렬함을 욕망이라고 할 때 인간의 욕망을 말하는 걸까? 등의 질문들이 있었습니다. 토론과 지난 자료들을 참고해 제가 이해한 바를 정리해보았습니다.

기관 없는 신체에서 ‘기관’은 ‘목적’과 ‘기능’을 부여받은 부분을 의미합니다. ‘보는 눈, 듣는 귀, 먹는 입.,’ 등이 그것이죠. 이 기관들이 각 기능을 유기적으로 수행하며 통일된 전체를 이루는 것이 유기체입니다. 인간의 신체뿐 아니라 관료 조직, 유럽의 문화인 집단, 신 등이 목적을 부여받은 기관으로 이루어진 유기체라 할 수 있습니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프랑스의 배우이자 작가인 아르토의 신체 개념을 빌려 이를 모든 존재로 확장합니다. 신체, 인간, 만물을 유기적 혹은 이분법적으로 심판하는 규정성을 거부하고 그 발생의 차원을 보라고 말합니다. 존재를 인간과 비인간, 정상과 비정상으로 환원할 수 없는, 무엇이든 발생할 수 있는 가능성으로서의 강렬함을 말이죠.

들뢰즈와 가타리는 강렬함을 욕망이라고도 말합니다. 이때의 욕망은 쾌락을 목적으로 가지는 인간에 국한된 개념이 아니라 만물를 통털어 끊임없이 변화하는 작용 혹은 ‘되기’의 과정 그 자체로서의 자연을 뜻합니다. 들뢰즈와 가타리가 ‘기관 없는 신체를 구성하라’고 했을 때, 우리에게 익숙하고 편한 나의 경험, 보편적 상식, 규범, 목적, 본질로 규정되지 않고 작동하는 그 강렬함의 차원을 활성화시키라는 것이겠지요. 자연의 일부로서, 나에게도 그 강렬함이 있으니까요. 불교에서 말하는 불성과 색즉시공의 개념과도 통한다는 이야기들도 재미있었지만, 너무 어마어마한 내용이라 차츰 알아가기로 하고 이만 마무리 하겠습니다.

그럼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전체 1

  • 2021-06-26 14:04
    우리 지영샘, 이번 주 후기를 두개나 쓰면서도 늦지 않게 올리다니 감동 + 수희찬탄~!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