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 글쓰기

<불교와 글쓰기> 3월 15일 4회 수업 후기

작성자
호정
작성일
2021-03-16 22:34
조회
3012
반장님의 토스 받아 후기 작성합니다. 애초 계획은 내일쯤 후기를 작성해서 올리는 거였는데, 반장님의 공지 글을 보고 열 받아 후기 씁니다. 에세이만 꽝인 줄 알았는데, 공통과제마저 후기에 밀리다니. 후기보다는 에세이를 잘 쓰고 싶은 1인입니다. 아무거나 하나라도 잘 쓴다면 그것으로 좋고, 다 못 쓴다면 앞으로 잘 쓸 수 있어 좋은 줄 모르니 공부를 좀 더 열심히 해야겠어요(자기 검열로 인해 바뀐 문장이랍니다. before : 불교 공부 헛했네요 / after : 공부를 좀 더 열심히 해야겠어요.) 무엇보다 ‘잘 쓰는 나’를 실체화시키는 사고의 습관이 여전히 강고하네요. 토론 시간에도 나온 얘기지만, 조건에 따라 달라지는 나를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고정된 주체를 상정하게 됩니다. 불교 공부 헛했으니 초심으로 돌아가야 하는 게 아니라, 돌아갈 초심 같은 것은 없으며 매번의 지금 여기의 발심이 초심임을 알아차리라는 학인들의 말씀이 웅웅웅.(에잇, 시끄러워. 찰싹. ㅎㅎ)

 

일어나 앉게 하는 자기 주도 학습

애들이나 하는 줄 알았던, 말로만 듣던 자기주도 학습이라는 걸 처음으로 해보았습니다. 나름대로 자기 학습의 계획을 세우고 실행한 내용을 공유한 첫 시간이었습니다. 각자 자기만의 속도와 밀도로 공부한 내용을 풀어놨습니다. 여러 책들을 훑어보며 방향을 잡아가는 것 같았는데, 그 과정 속에서 주제가 좀 더 좁혀지기도 확대되기도 하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 공부의 내용은 크게 초기불교의 사성제와 팔정도, 무상, 무아, 불교 심리학, 디가 니까야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성제 중에서도 ‘고’에 대한 얘기가 많았는데, 자신의 ‘고’의 문제가 잘 해결되지 않아서겠지요. 저는 ‘고’가 고인줄 모르고 ‘쾌’로만 느끼고 대상을 바꿔가며 끊임없이 ‘쾌’를 추구하는 데 이번엔 정말 ‘고’를 좀 파고 싶네요.

부처님의 생애에 관한 책들은 공통적으로 읽고 있었습니다. 저자에 따라 부처님 생애가 다양한 결로 해석되는 것 같았아요. 우리는 책을 통해 부처님이 어떤 마음으로 깨달음의 길을 가게 됐는지를 읽어가면서, 지금 여기에서 나는 어떻게 부처가 될 수 있는지, 오늘날 부처의 의미는 무엇인지 힌트를 얻으려고 했습니다.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주인공에 감정이입하고 전기를 읽으면 위인에 감정이입을 하게 되죠. 그리고 나와 비교를 하죠. 부처님은 왜 그때 그랬을까? 나라면 안 그랬을 텐데. 부처님은 왜 그랬고 나는 왜 안 그럴까? 우리의 공통과제 속에는 이런 것들을 포함해서 여러 가지 궁금증들이 있었습니다. ‘부처님은 인간의 생로병사를 보며 삶이 고임을 알았는데 왜 체념과 허무로 가지 않고 깨달음의 길을 추구했을까?’ ‘부처님은 자신과 자신이 사랑하는 것들의 노병사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출가한 것일까? 아니면 그렇게 애착과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는 자신에 대한 환멸 때문에 출가한 것일까? 세속의 모든 좋은 것들을 버리고 떠나는 그 마음은 어떤 것일까?’ ‘그런데, 부처의 문제의식을 알고 그의 수행 방법을 이해하면 내 고통이 해결되나? 오히려 나의 고통에 집중해야 하는 것 아닌가?’ 라는 저의 의문에 ‘내가 찾은 부처님 출가의 답은 내가 해석한 부처님 마음이므로 결국 나의 고통에 대한 관점’이라는 답을 듣고 머리를 끄덕였습니다.

와우. 다양체 만세. 다양한 생각들이 여기저기 널부러져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교환되고 침투하면서 서로를 촉발시켜서 생각이 풍부해지고 방향이 바뀌는 과정들이 재미있었습니다. 잘 듣는 자세는 기본 전제죠. 꽤 긴 시간 이야기들을 나눴는데, 자리 이탈 없이, 중간에 대화를 끊는 일도 별로 없이 열심히들 듣더군요(덕분에 칠판에 적을 이름이 없어 반장님이 심심했다는). 아마 하나의 큰 힘, 내리누르는 중심이 없어서였을까요? 채운이 없으니 빈 가운데 모두가 중심이 되어 연결접속하며 채워가고 있네요. 근데, 여러분. 정말 들으려고 하면 가끔은 들리기도 하더군요. 나와 다른 사고체계를 가진 사람이 자신의 의견이나 마음을 열심히 설명하려고 할 때 그 사람의 맥락을 따라가려고 하다보면 가끔은 얻어 걸리기도 하네요. 오늘의 소득이었습니다.

 

일어나 움직이게 하는 연구원들의 열정  

규문각을 세미나 장소로 활용하기 위해 공간 재정비 작업 하느라 ‘피땀눈물’ 흘리는 규문 연구원들의 열정에 감화되어 저희도 잠시 일손을 보탰습니다. 불교-천사팀은 짧고 강렬한 날개짓을 펼치고 ‘이제는 돌아와 거울앞에 선 누이처럼’ 고요히 돌아와 앉아 다음 토론을 이어갔습니다. 참고로, 공간 이름을 모집한다는 귀띔에 두 손 모아 조심스럽게 외쳐봅니다. ‘합방!!!’

 

계를 잘 지키는 수행자  

지난 시간에 이어 천의고원 1,2장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저는 배치, 다양체, 탈기관과 같은 개념들이 왜 갑자기 툭 튀어나오는지 이해를 못 했습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는 매일 만나지만, 기존의 존재론으로는 포착하기 힘든 ‘결혼식, 축구 경기, 강의’ 같은 이벤트들, 사건들. 우리의 매일의 삶을 구성하는 이런 것들. 우리가 다 안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새로운 눈으로 사유할 수 있도록 하는 개념이 배치, 다양체라는군요. 그리고 그 배치는 구조의 측면에서 여러 선들, 층들, 영토(성)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운동의 측면에서 탈주선, 탈영토화, 탈층화의 운동을 포함합니다. 새로운 사유를 말하는 책을 읽으면서도 우리는 또 지층은 나쁜 것, 탈영토화는 좋은 것이라는 이분법적 나누기를 계속 합니다. 기관 없는 신체가 모두 좋은 것이 아니라 탈주의 방향에 따라 충만하기도 하고 자기파괴적이기도 합니다. 지층과 탈영토화도 고정된 것은 아닙니다. 고정된 상태에 머물지 않으며 끊임없이 차이를 발생시키는 배치. 우리는 어떤 배치를 만들어갈 것인가? 변화와 생성을 말하고 배치의 방향을 고민하는 들뢰즈의 철학은 실용적이고 실천적인 불교와 닮았습니다. 천개의 고원을 다 이해하려는 어마무시한 탐욕을 내려놓고, 이 책을 읽으면서 촉발되는 것들을 통해 리좀적 사유를 연습해 보아요. 천개의 고원이 우리의 불교 공부를 더 풍성하게 촉발시키길. 폭발시켜도 괜찮습니다.

수행에 있어 중요한 것은 바른 견해와 정진이고 정진에 있어 중요한 것은 계를 잘 지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선택적으로 잘 지키는 계가 있습니다. 시간 엄수. 특히, 끝나는 시간 엄수. 조금 어겼습니다. 예정보다 늦게 끝났습니다. 참회합니다. 다음엔 더 잘 지키도록 하겠습니다.

아울러, 이번 수업 시간에 카랑카랑한 경아샘 목소리가 안 들려 이상하다는 민호샘 목소리도 전달합니다. 다른 샘들 마음은 나도 몰러. 궁금해? 궁금하면 감정의 다발인 마음을 주제로 글을 쓰고 싶다는 현숙샘께 물어보길. 일단 민호샘은 허전한 걸로.
전체 6

  • 2021-03-17 11:36
    ㅋㅋ 역쉬! 넘 재미있어요. ^^ 호정샘의 공통과제와 에세이가 후기보다 재미있어질 그날을 기대하겠슴다~!
    채운 이 없이 비운 가운데 모두가 중심이 되어 연결 접속하느라 넘 집중을 한 나머지 저는 그날 수업 마치고 완죤 방전되었다는 ㅎㅎ

  • 2021-03-17 11:44
    호정샘 후기는 역쉬 갑입니다요~ 그나저나 울 미노샘이 저를 챙겨주셨다니 수업 못가서울쩍했는데 큰 위안이 됩니다^^ 모두들 다음 주에 뵈요~

  • 2021-03-17 16:57
    열받아 쓴글이 왜이런거야? 즐기고 있잖아? 흥 안속아!!ㅋㅋㅋ

  • 2021-03-17 22:46
    함께 나눈 이야기와 샘의 희노애락이 정말 유쾌하게 담겼구만유~ 역시 후기 장인~
    저도 지금 여기서 제가 할 수 있는 걸 해봅니다.
    불교샘들이 행복과 행복의 원인들을 얻길 바랍니다_()_

  • 2021-03-18 08:55
    한나절 일거리를 한시간으로 훅 줄여주신 불교-천사팀!(저는 피땀눈물에서 슬쩍 빠져보려 했지만, 불교-천사팀이었던 것으로ㅎㅎ) 이번 시간에는 정말 '고'가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 2021-03-18 10:49
    어제 명리 수업 마치고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서서' 까마득하게 느껴지는 지난 불교 시간을 돌아보게 한 '끝내주는!!' 후기였슴다~~^^
    역시 후기는 호정!! 그렇다고 에세이가 후기만 못하다는 얘기는 절대 아님~!! ㅎㅎㅎ
    지난 불교 수업의 가장 큰 성과가 '채운'이 없으니 '비운' 가운데 훌륭하게 중심을 잡아 연결 접속되었다는 점? ㅋㅋㅋㅋㅋ
    아주 쎈쑤있는 요점 정리 감사함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