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 글쓰기

<불교와 글쓰기> 3월 1일 2회 수업 후기

작성자
김훈
작성일
2021-03-03 13:27
조회
2984
<불교와 글쓰기> 3월 1일 2회 수업 후기

우리의 참된 본성의 일부인 지혜와 자비, 무한한 순수성을 체험하기 위해 지금 이 순간을 떠나 다른 곳을 찾을 필요가 없습니다. 이 성품들은 지금 이 순간 말고는 다른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냥 잠시 멈춰서 그것이 바로 우리 앞에 있음을 알아차리기만 하면 됩니다. 이점이 중요합니다.

_욘게이 밍규르 린포체

윤지샘께서 주신 명상 책 첫 장에 위와 같은 구절이 있더군요. 저 책을 주시는 날, 위 첫 줄에 나오는 '지혜'와 '자비'라는 단어에서 뭔가 알 수 없는 작은 감화가 있었습니다. 어쩌면 간혹 공부하면서 답답하다 느껴 새로운 앎을 욕심내는 것이, 이런 귀한 단어들에 ‘너무나 뻔하다 치부하고 익숙해져 버려서, 더 이상 감화가 일어나지 않는 것에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불교와 세미나의 첫 시간은 자애 명상이었습니다. 이 시간에 윤지샘께서 뭔가 안 풀리는 것이 있었는데, 그 실마리를 어느 날 스님이 지혜, 자비, 알아차림 이 세 가지의 중요성에 대해 말씀해주시는 것을 듣고 얽혀있던 실타래가 풀리는 것처럼 큰 성찰이 있었다 말씀하시더군요. 위에 인용한 글처럼 우리가 온전히 이 순간에 머무는 것은 인간 본연의 내재된 무한한 순수성과 바로 내 앞에 놓인 지혜와 자비를 알아차리는 데 있다는 구절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자애명상을 마친 후 함께 숫타니파타 낭송하는 시간이었지만 낭송하기 전, 샘들의 마음이 모아져 지영샘이 요즘 외우고 있는 숫타니파타 암송하는 것을 들어보기로 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틀리는 것 없이 차분하게 암송하는 소리를 듣고 있자니, 제 자신이 읽었을 때와는 다른 ‘좋음’이 있더군요. 아마 다른 샘들도 약간의 결들은 다르겠으나 비슷한 마음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듭니다. 지영샘의 처지를 알고 그 마음 냄을 다들 알고 있기에 말입니다.

점심을 먹고 산책을 하는 것이 일정이었으나 비가 내리치는 통에 산책은 포기하고 숫타니파타 세미나를 일찍 시작했습니다. 다들 읽고 생각났거나 느낀 것을 써온 공동과제로 토론을 했습니다. 각각의 저마다의 구체적인 사연들 속에서, 혹은 <천개의 고원>을 가져다가 사유해보는 등.., 허투루 쓴 글이 하나도 없더군요. 호정샘과 현숙샘께서 읽다가 '울컥' 하시기도 했답니다. 그리고 저로선 '아. 불교와 글쓰기'가 이런 분위기였구나. 하고 알게 되는 순간이었기도 했습니다. 저는 공통과제라 하기에 요점정리 정도해서 토론을 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써왔는데 정말 한편의 에세이를 써야 됐던 것이었네요. 그것도 진심 자신의 깊은 이야기까지 끌어내서 쓸 정도로 진지한 시간이었던 것입니다. 다음에는 ‘공통과제를 제대로 해야겠구나’라는 반성이~ ㅎ

요즘 제가 식도염으로 계속 고생하다 보니, 현숙샘의 한마디가 머릿속에 맴돌기도 했답니다. 오후 세미나 시작 전에 "몸이 아프니까. 공부가 뒷전이야. 몸부터 만들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라는 말씀을 들으니 공감이...

숫타니파타 세미나를 마치고 바로 들뢰즈<천개의 고원>세미나가 이어졌습니다. 텍스트 자체가 어려워서 '훅' 맥락에서 벗어나기도 하고 갑자기 묵직하게 조용해졌다가도 열띠게 토론이 이어지기도 하며 좌충우돌이었지만 그것이 이 책이 주는 묘미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리좀적으로 책읽기란 무엇인가?'가 가장 큰 화두로 토론이 이어졌던 기억이 나네요. 역시 결론은 나지 않았지만 리좀이 처음과 끝이 없는 선이며 중간이고 역동적인 과정이라면, 딱 그에 맞게 <천개의 고원>을 이해하는 중간과 과정으로서의 리좀적 세미나였지 않나 싶네요. ㅎ

마지막으로 '불교의 글쓰기'의 공식적인 세미나 시간을 다 마치고 저녁식사 겸 회식 타임을 근처 부대찌개 집에서 갔었습니다. 세미나에서는 할 수 없는 수다들과 샘들에 대해 알아갈 수 있는 시간이라 저로선 더없이 즐거운 시간이 아닐 수가 없었네요. 비가 종일 내리는 중에도 숫타니파타의 "하늘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뿌리소서!"처럼 여러 샘들의 마음이 이처럼 웃고 떠들며 따뜻할 수 있는 건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것으로 얽힌 관계가 아닌 공부와 마음으로 맺어진 관계이기 때문이지 않을까요.

_이상~ 불교의 글쓰기 후기였습니다.
전체 3

  • 2021-03-03 13:44
    와 훈쌤~~ 담백한 후기~~ 잘 보았어요!! 감사합니다^^

  • 2021-03-03 18:09
    민호와 훈쌤이 불교팀에 합류하니 우리 불교팀의 토론 분위기가 싸악~!! 바뀌었어요. 부분과 전체가 바로 이런 관계로구나, 다시 한번 확인했더랬죠.
    아주 작은 기운 하나가 바뀌어도 전체가 다 새롭게 다시 태어나는, 이 신비로운 우주자연의 이치를우리는 매번 겪고 있는 것이지요!
    암튼, 두 청년들과 함께 유목민이 되어 천 개의 고원을 두루 넘나들게 되어 참 좋습니다.
    훈샘의 따뜻하고 성실하고 속깊은 이 후기같은 에세이를 이제 매주 만날 수 있겠네요! 기대 만땅입니다~~^^

  • 2021-03-09 18:50
    뒤늦게 읽어 보았는데, 훈샘 문장이 되게 좋아지셨네요. 비문도 거의 없고요! 선물목록 쓰기의 효과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