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 글쓰기

0612 수업 후기

작성자
潤枝
작성일
2017-06-15 20:49
조회
2840
<불교와 글쓰기> 4회차 세미나는 디가니까야 1품의 4경~8경까지를 읽고 공부를 했습니다. 이제 함께 공부하는 분들의 얼굴과 이름이 익숙해져서 과제로 써온 글을 돌리고 순서를 잡는데도 헤매는 시간이 많이 줄어든 것 같습니다. ^^ 처음에는 생소하기만 하던 디가니까야의 고대 인도 등장인물들 이름을 발음하는 것도 이제 조금씩 익숙하게 느껴지고요. 배경도 이름도 화려한(?) 이들이 이번 경에서는 붓다에게 어떤 질문을 하는지 매번 흥미롭습니다.

그런데 1품에서 매 경마다 도돌이표로 반복되어 나오는 불교의 교리들이 왜 저는 어렵게만 느껴지는 걸까요? 이번 수업에서 채운 샘의 말씀을 듣고 보니 2,500년 전 내용을 그대로 가져와서 이해하려면 거리감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걸 알았습니다. 부처님께서 설명하신 내용의 핵심과 맥락을 이해하고 그것을 우리의 현시점에 맞게 재해석해서 읽고 받아들이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불교 경전을 그렇게 잘 읽어내려면 갈 길이 멀겠지만, 이렇게 매주 함께 공부하다보면 길이 조금씩 열리겠죠? ^^

이번 주에도 채운 샘께서 경전에 등장한 불교의 개념들을 주옥같은 설명을 곁들여 말씀해 주셨는데, 그 중에서도 고행/금욕에 대한 불교의 입장과 계,정,혜에 관한 설명 이 두 가지를 간단히 정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1) 고행과 금욕

부처님은 쾌락은 멀리해야 하는 것이니 쾌락을 억압해야 한다고 하셨을까요? 아닙니다. 부처님은 쾌락에 집착하지 말라고 했지 존재하는 쾌락 자체를 부정하지 않으셨습니다. 쾌락 자체도 조건의 발생으로 나타난 것이니까요.

쾌락을 부정하고 억압하면서 금욕을 이상화한 대표적인 경우가 기독교인데요, 기독교에서는 쾌락을 성(性)과 연결시킴으로써 육체를 비하시키고 영혼을 우위에 두는 입장을 취했습니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과욕을 줄이고 쾌락에 대한 집착을 없애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청정하게 절제한다는 측면에서 불교는 금욕주의라고 할 수 있지만, 그것은 결코 억압적인 금욕이 아닙니다. 가령 붓다의 금욕주의에는 섭생이 중요했습니다. 1일 1식 탁발로 몸의 균형을 유지하되, 음식에 대한 탐착은 경계했던 것입니다. 즉, 어떻게 내 몸의 감각이 주는 쾌락에 집착하지 않으면서 감각을 긍정할 수 있을까를 수행했던 것이죠. 번뇌는 감각적 쾌락에 대한 갈애와 그것을 누리지 못하는 두려움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므로 수행에서 감각 그 자체를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붓다는 육체와 감각의 쾌락을 억압하고 부정하는 고행을 통한 수행으로는 깨달음에 이를 수 없다고 단언합니다.

2) 계, 정, 혜

계, 정, 혜가 놓인 위치와 맥락을 이해해야 한다고 채운 샘께서 설명을 시작하셨을 때, 계정혜에 관한 글을 써간 1인으로서 저는 순간 너무나 부끄러웠답니다. 계.정.혜가 무엇인지 그것의 기초적 정의를 이해하고 정리하느라 다른 질문이나 맥락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으니 말입니다.

우선 2,500년 전 계율(戒)을 현대에도 그대로 적용시키는 것은 무리라고 합니다. 고대의 계율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시대적 상황과 배경에 놓여 있었으므로 우리는 그것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서 지금 여기서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까를 고민해봐야 합니다. 바로 계행과 지혜가 함께 가야하는 이유입니다. 계율을 맹목적으로 고수하는 것이 아니라 지혜를 기반으로 계행도 변해야 한다는 것이죠. 따라서 계율이 실천하고자 하는 큰 흐름과 각 계율의 근본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선정(定)은 마음을 집중함으로써 우리의 마음이 지니고 있는 막강한 힘을 경험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마약을 복용하는 사람들은 때로 현실을 초월한 각성된 세계를 느낀다고 하는데, 추측 건데 아마도 그 보다 더 깊은 환희의 세계가 선정의 상태가 도달한 체험이 아닐까 합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우리 마음의 역량을 다르게 쓰는 훈련이라고 할까요. 채운 샘은 책을 몰입해서 읽는 것도 일종의 선정이고, 글을 쓰면서 내가 지닌 문제의식을 끝까지 밀고 나가는 힘도 선정과 유사한 경험일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선정의 상태가 궁금할 따름입니다. 노력하면 언젠가 직접 체험해볼 수 있을까요? ^^

혜(慧)는 통찰의 지혜를 의미합니다. 붓다처럼 공(空)이라는 절대적 경지를 깨달은 자는 인간의 마음과 번뇌, 삶과 죽음에 대한 인식이 확 뚫립니다. 도(道)는 ‘안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깨닫는다’고 하듯이 기존의 앎을 깨부수고 나오는 것, 앎의 차원 자체가 달라지는 것이 지혜입니다. 머리로 만이 아닌 내 몸 전체로 받아들여 알게 되는 것, 그리고 그 앎이 나의 삶을 지배하고 바꿀 때 그것을 혜(慧)라고 할 수 있겠죠.

후기를 올리려고 하니 방금 전에 수경 샘께서 복기를 통해 수업내용을 훨씬 훌륭하게 정리를 해주셨네요! 역시 수경샘! ^^ 부족한 부분을 미리 보충해 주시니 고맙습니다. 모두 다음 주 월요일에 뵙겠습니다.
전체 2

  • 2017-06-16 09:51
    "책을 몰입해서 읽는 것도 일종의 선정이고, 글을 쓰면서 내가 지닌 문제의식을 끝까지 밀고 나가는 힘도 선정과 유사한 경험" "앎이 나의 삶을 지배하고 바꿀 때 그것을 혜(慧)라고" 맘속으로 쫙쫙 줄친 구절이어요. 수행은 수행자들의 몫이라고 생각하면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되지만 이렇게 우리 현실로 가져와 해석하면 마음이 더 푹푹 와닿는 듯. >_

  • 2017-06-16 13:55
    와 윤지샘 쏙쏙 들어오는 후기 감사해요 ^ㅇ^ 저도 계정혜 설명에 밑줄 쫙쫙~ "우리 마음의 역량을 다르게 쓰는 훈련"이란 문장이 참으로 와닿습니다. 모든 공부는 마음공부라는 말이 바로 이것ㅋ